본문 바로가기

생각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머릿 속 공포가 더 무서운 이유

728x90

회사 내 확진자가 발생했다. 밀접접촉자는 아닐 것 같지만(아직 역학조사가 나오지도 않았다...공포를 더 키우는 이유) 그래도 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 문자가 와서 오늘 급히 움직였다. 

 

*혹시 이런 급한 상황 맞으신다면: (1) 검사 통보 받고 근처 가장 가까운 보건소 열었나 확인 (2) 닫았으면 강남보건소 생각해보기 (평일 저녁 8시, 주말 7시까지 함) (3) 집으로 즉시 귀가하고 다음날 보건소를 간다 

 

나는 강남 보건소로 향했다. 우리 지역은 토요일에 아예 휴무던데... 강남 보건소는 서울에서 가장 길게, 열심히 하는 곳 같았다. 의료진 분들 정말 고생하신다. 

 

검사는 진짜 간단했다. 내 머릿 속에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로 밀려오는 각종 상상이 날 더 괴롭혔던 것이었다. 

 

처음엔 선별진료소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에서 개인 정보 등등을 간단히 적고 건물 안으로 안내된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검채 체취하는 방에 들어가 면봉으로 검사를 받는다.

 

면봉은 두 개. 하나는 입으로 하나는 코로 들어간다. 코로 들어가는 게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서 잔뜩 겁먹었지만, 난 진짜 하나도 안 아팠다. 그냥 깊이 찔러서 콧물이 좀 나온 것 뿐. 근데 주변 의견을 종합해보니 코 면봉이 아픈 것은 케바케인 것 같았다. 사람 코 구조가 다르려나.

 

어제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왔단 소리를 듣고 어제오늘 이틀을 하려고 했던 일을 못하고 집에 있게 됐다. 그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크게 느껴졌다.

 

머릿 속에서 재생되는 온갖 시나리오, 걱정들이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나는 그래서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머릿 속은 뿌옇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첩을 펴들었다. 좋아하는 만년필로 의식 흐름대로 글을 적었다.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니 나는 내가 내 인생에서 내 얘기를 갖고 유명해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데이팅 어플에서 얼굴 모르는 사람이 '직장을 다니다보면 고인물이 될 것 같아 스터디'를 한다고 말했고 이는 정말 내 머리가 굳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편한 것만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나는 20대 초중반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어렵게 찾은 이 자그마한 안락을 갖고 늘어지겠다. 대충 이런 심보같다.

 

그런데 난 또 한 편으로는 성장을 원한다. 원하는 것이 하나로 정리되면 그것만 보고 살아가면 될텐데 나의 내면은 이렇게 조각 나 있다. 

 

나는 글을 써 밥을 먹고 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회사가 너무 싫어지면서 글 쓰는 일에도 무의식이 젖어든 것 같았다. 나의 무의식은 '이 회사가 싫으니깐 일도 제대로 할 순 없다'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글 쓰는 실력을 잠자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내 밥줄과 연결돼 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머릿 속이 어쩐지 뿌옇다. 나는 괜찮은 걸까? 갑자기 걱정된다. 

 

이곳에서 그래서 더더 자주오고 더더 자주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런데 핸드폰만 들여다 보는 것이 나의 '세이프 존'이다. 전혀 아늑하지 않은 '안전 공간'이지만...

 

사람이 24/7 생산적일 수도 없고 우울한 시기도 있는 것이고. 나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청소년기에 정말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입시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 후유증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그 트라우마는 아직까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난 더 꿈을 갖거나 목표를 갖는 게 두려워졌다. 더 완벽주의가 된 것 같기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겠다고 흐르는대로 살았는데 완벽주의는 내 눈을 속이고 내 삶 곳곳에 숨어있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무서워 하는 사람도 됐다. 많이 변했다. 

 

나는 괜찮은 걸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잘 사는 것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나의 기준은 있나? 

 

잘 사는 것의 기준이 의미가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이라는 판단도 에고의 판단이지 않나. 자유의지는 정말 있을까.

 

생각이 저 바닥 끝까지 갔다. 나는 즐거운 일을 뿌듯한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가까이 두고 싶다. 건강하게 가까이 말이다. 

 

이런 얘기는 20대 중반부터 했다. 그러니깐 말야 나는 한국에 돌아온 2015년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도 저런 뜬구름 위를 걷는 말들을 수첩에 적어놨었지. (그 땐 더 뜬구름 잡았다. 저게 무슨 의미인줄은 알고 썼을까)

 

그래도 난 1년을 버텼다. 첫 직장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하고 월급을 받고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고 그렇게 사회 생활을 하고 어른답게, 그렇게 1년을 버텼다. 

 

2018년 알게된 지인들은 내가 뭘 그만두는 것에 정통난 사람으로 알고 있더라. 그래서 이번 직장도 아직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렇다했더니 좀 놀라더라. 나도 안다. 나는 방황을 많이 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만두는 것에 가차가 없었다.

 

그런데 난 버텼다 이렇게. 그런데 또 불만이 생겼다. '아 난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는 쫄보가 됐나'

 

그렇게 생각하기엔 1년 직장 다닌 것 갖고 '너무 안주해 있었나'라고 생각할 필욘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커리어측면에선 2년은 돼야 경력으로 보지 않느냐.

 

인생이라는 시간 전체를 두고 봤을 때 1년이 짧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20대 후반 지금의 1년... 아주 소중하다. 인생 어느 시기가 안 소중하겠냐만은... 내가 혹시 정말 굳어버릴까봐, 두렵다. 

 

회사 일이 엄청 고착화돼 있고 하던 것만 쭉 하면 돼서 말이다... 나도 신나게 이것저것 고민하며 그렇게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근데 난 딴 생각도 했었다. 음악이 내 진정한 열정이기 때문에 회사 따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근데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치기엔 커리어라는 게 1주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며 내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728x90